주일설교
두 장사꾼이 높고 험난한 산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때는 여름이고 해는 중천에 떠 있어서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하는 무더운 날씨였습니다.
장사꾼 중의 한 사람은 그 큰 산을
짜증난 시선으로 바라다보면서 중얼 거렸습니다.
“재수 없는 날이군!
어느 세월에 이 산을 넘는단 말인가?”
그런데 다른 한 장사꾼은
희망찬 시선으로 놓은 산을 바라보면서,
얼굴에 미소를 띠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재수 좋은 날이군!
이렇게 험한 산이 있으니 저 산 너머엔
장사꾼이 자주 올 수 없었을 거야.
그러니 산을 넘어 가기만하면
물건을 쉽게 팔 수 있을 거야.”
앞의 장사꾼은 산 너머 마을에서 얻게 될
기쁨을 보지 못하고 목전의 고생만 바라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높은 산은
장애물로만 여겨질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자의 장사꾼은 목전의 고생보다
그 다음에 올 기쁨을 바라다본 사람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높은 산은 성공을 위한 디딤돌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실패할 사람은
목전의 수고만 바라보고 쉽게 좌절합니다.
그러나 성공할 사람은 고생과 수고 다음에
찾아올 영광 을 바라다보면서 인내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이 두 장사꾼과 같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산 너머의 기쁨을 위해 인내한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당장 너머야 할 산만 보고
성급하게 굴다가 허망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입니다.
오늘은 이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 안에서 지혜를 얻으려고 합니다.
먼저, 산 너머에서 얻게 될 기쁨을 위해서
당장 산을 넘는 수고를 인내한 사람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다윗입니다.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명실상부한 왕이 되기까지
다윗은 7년 반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때까지 세 번의 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아사헬이 죽고(2장),
아브넬이 죽고(3장)
이스보셋이(4장)살해되었습니다.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어도 그 모든 피는
흘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사울이 전사한 후 사울의 군대 장관이었던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공공연하게 도전하면서
사울의 아들을 왕으로 삼고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보셋은 아브넬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 왕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지 않을 때
분열과 파멸이 있을 뿐입니다.(약3장13-4장1절)
이 때 유다지파는 이러한 정치적 상황을
정통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기름 부음을 받았던
다윗은 그들의 왕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10년 동안 광야에서 쫓기는 생활 속에서
단단히 훈련을 받은 용사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군사력은 다른 11지파를 능가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기 위해서
군사적 행동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군사적 행동을 통해서 11지파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왕으로 등극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 친척과 가족과 친구가 다윗과의 전투에서 죽었는데,
어느 누가 다윗을 마음으로부터 왕으로 인정하며 섬길 수 있겠습니까?
다윗이 힘이 있을 때야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겠지만,
다윗이 힘이 빠지게 되면 언제든지 반역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힘으로 권력을 가질 때 나타나는 현상인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때를 기다리는 쪽을 선택함으로
7년 반을 더 기다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중에도
다윗과 같이 광야에서 쫓기는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뜻을 기다리면서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셔서
처음에는 그렇게도 보이지 않던 목표와 결승점이
일단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하게 됩니다.
하나의 선택은 조금만 더 이렇게 가면 되겠지 하고
계산을 하고, 자기 실력과 힘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의 선택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인도를 간구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물론 자기 실력과 힘을 동원하는 사람은
대부분의 경우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반면에 끝까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구하면서
인내하고 기다리는 사람은 결국 목표에 다다르게 됩니다.
성경을 읽어 보면,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 는 탄식의 말이 나옵니다.
즉, 성령으로 시작했으면 성령으로 마쳐야 하고,
하나님의 약속으로 시작했으면
하나님의 성취로 마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처음에는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마지막에 가서 성급하게 육체로 하다가
실패하는 성도들이 꽤 많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10년 광야 생활을 마친 다윗이
결국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유다의 왕이 되었을 때,
그는 절대로 자기 계산, 자기 힘, 자기 실력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려고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쪽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위대한 점이었습니다.
다윗은 10년 광야 생활이라는 큰 산을 넘었습니다.
이제는 됐구나! 싶었지만 뜻 밖에도
만만치 않는 또 다른 큰 산이 다윗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큰 산에 가로 막혀 있던 다윗은
불평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빨리 산을
넘어가려고 지름길을 찾는 대신에,
산 뒤에 기다리고 있을 영광스런 대관식을 기대하면서
천천히 주어진 산을 차근차근 넘어가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다윗의 측근들이 이와 같은
다윗의 선택을 모두 이해했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다윗의 누이인 수르아의 아들들인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은 다윗의 신복중의 신복이고,
측근 중의 측근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다윗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노예해방을 위해서 남북전쟁도 불사했던
링컨 대통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윗처럼 링컨 대통령 곁에도 많은 참모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참모들이 링컨 대통령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의 뜻을 절대적으로 지지해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너무 비관적이어서
남북전쟁은 실패할 것이라며 힘을 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링컨 대통령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붙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윗의 측근들과 참모들은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는
다윗이 바보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다윗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기다렸습니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다윗이 요지부동 하나님의 때만을 기다리자
그들은 다윗을 답답해하면서
자기 생각과 자기 계산과 자기 실력으로
어떻게든 지름길을 찾아서 하루라도 빨리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건을 일으키게 됩니다.
아사헬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누나인 스르야의 아들이었습니다.
즉, 그의 출신 성분은 꽤 괜찮았습니다.
또한 아사헬이란 이름 자체의 뜻은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즉, 참 잘생기고 멋있는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말입니다.
게다가 성경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들의 사슴 같이 빨리 달렸다고 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잘 달렸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고,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아사헬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매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매력적이었으면 아사헬을 죽였던
아브넬 조차도 아사헬을 아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매력적이었던 아사헬은
참으로 어처구니없게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사무엘하 2장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2:14 아브넬이 요압에게 이르되 청컨대 소년들로 일어나서
우리 앞에서 장난하게 하자 요압이 가로되 일어나게 하자 하매
처음 싸움의 발단은 순전히 장난이었습니다.
다윗이 싸움을 명령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민족이나 정의를 위해서 싸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더더구나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싸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이스보셋 편과 다윗 편이 서로 모여
장난하듯 시작되었던 싸움이었습니다.
즉, 이 싸움은 일종의 게임과 같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장난처럼 시작되었던 싸움이
점점 갈수록 치열해지는 양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브넬의 군대가 다윗의 군대에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의 신복들 중 아사헬이
자신의 빠른 발을 이용해서 상대편 군대의 장관인
아브넬을 뒤쫓아 잡으려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아사헬이 죽일 듯이 뒤쫓아 오자 아브넬이 말합니다.
“아사헬아 너냐? 너는 왜 나를 좇아오느냐?
네가 만일 공을 세우고 싶다면 차라리
옆에 있는 소년 하나를 잡아서 그 옷을 뺏어 가거라.
그러면 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아브넬의 말을 아사헬이 듣지 않습니다.
아사헬은 죽일 듯이 아브넬을 뒤쫓았습니다.
그러자 아사헬로부터 살의를 느낀 아브넬이 말합니다. 22절
“내가 너를 죽이게 되면 내가 네 형 요압을 어떻게 보겠느냐?
그러니까 제발 좀 그만 좇아오라.”
그렇게 군대 장관 아브넬은 아사헬에게 경고를 했습니다.
그래도 듣지 않고 아사헬이 뒤쫓아 오자
아브넬은 결국 더 이상 쫓기는 대신에
뒤 돌아 서서 아사헬에게 창을 겨누게 됩니다.
제 아무리 발 빠른 용사 아사헬이라고 해도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군대 장관 아브넬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아브넬의 창은 아사헬의 배를 찔러서
등까지 관통시키고 말았습니다.
아사헬은 아브넬의 창을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아사헬은 장난처럼 시작했던 싸움에서
아브넬을 죽일 듯이 뒤쫓았던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아사헬의 조급함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이 왕으로 섬기고 있던 다윗을
하루라도 빨리 이스라엘 전체 왕으로 옹립하고 싶었던
아사헬의 조급함이 결국 그로 죽음을 맞게 했던 것입니다.
처음 장난을 건 것은 아브넬이었습니다.
아브넬이 먼저 요압에게 소년들끼리 싸우게 하자고 했습니다.
이에 요압이 장난에 응하여
처음에는 소년들끼리 칼로 찌르며 싸우게 했습니다.
그런데 장난으로 시작했던 싸움이
점점 감정을 고조시키더니
급기야는 서로에 대한 반감과 분노를 일으키면서
걷잡을 수 없는 진짜 전쟁이 되었습니다.
요압과 형제들은 이 기회를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특별히 어린 아사헬은 젊은 혈기로
이 기회를 통해서 저쪽 편 군대 장관 아브넬을 죽이면,
이스보셋은 힘없이 무너질 것이고,
그러면 다윗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사헬은 단순무식하게
오직 아브넬만을 뒤쫓았습니다.
자신의 빠른 발을 이용하여 아브넬을 죽일 듯이 뒤쫓았습니다.
처음에 아브넬은 아사헬의 추격을 장난처럼 즐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사헬의 태도가 장난이 아니고,
정말 자신을 죽이려고 뒤쫓는 것임을 알았을 때,
아브넬도 어쩔 수 없이 창끝을 아사헬에게 겨누었을 것입니다.
아사헬은 아브넬이 도망가자
마치 자신이 그를 붙잡으면 죽일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습니다.
그가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명실상부한
군대 장관이라는 사실을 무시했던 것입니다.
결과, 아사헬의 성급한 판단과 행동으로 그는 목숨을 잃었고,
자신이 섬기던 왕 다윗을 오히려 어려움에 처하게 했습니다.
이와 같은 아사헬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저는 문득 디모데, 에바브로디도, 디도를 떠올려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이방 선교의 사명을 받은 바울을 돕는 참모들이었습니다.
즉, 다윗의 참모였던 아사헬과 같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사헬과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은 이름도 없고, 빛도 없이 바울이 하는 일을
옆에서 돕고, 뒤치다꺼리 하면서 살았지만
그들의 이름은 하나님의 생명책에 찬란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유는 그들은 자신의 힘과 실력과 판단에 따라
바울을 섬기고, 바울을 조종하고, 바울을 통제하는 대신에
오직 하나님의 뜻과 인도를 따라
조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바울을 돕고, 바울과 협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사헬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때를 기다리는 다윗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자신의 뜻과 힘과 실력으로 다윗을 하루라도 빨리
왕으로 옹립하고자 있는 힘을 다해 아브넬을 쫓았다가
결국 아브넬의 창에 맞아 비명횡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궁지에 몰아넣게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으로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성령으로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매 순간마다
성령에 의지하고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에 의지하면서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우리에겐 덕목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인내, 오래 참음이라는 덕목입니다.
하나님의 때, 성령의 타이밍은 절대로 빠른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절대로 늦는 법도 없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정확한 타이밍을 개런티합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들은 타이밍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자신의 힘과 실력을 행사하여
타이밍을 제멋대로 조장하려합니다.
그러나 타이밍은, 시간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조정하지 않는 타이밍은
언제나 커다란 부작용을 낳기 마련인 것입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0년의 광야 생활 후,
프리 웨이를 달릴 것이라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구불구불한 로컬로 7년 반을 더 달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리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사헬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판단과 힘과 실력으로 다윗을
하루라도 빨리 왕으로 만들고자
아브넬을 뒤쫓다가 결국 아브넬의 창에 맞아 죽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차이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느냐? 경외하지 않느냐? 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기다릴 줄 압니다.
비록 무기력해 보이고, 미련해 보여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 결국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과 힘과 실력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타이밍을 자신의 뜻에 종속시키려고 합니다.
물론 타이밍은 결코 어리석은 사람의 편이 아닙니다.
비록 한 두 번은 타이밍을 자기 뜻대로 주무를 수 있을지라도
결국 마지막 타이밍은 오히려 자신에게 칼을 겨누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직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때를
겸손하게 기다리고 기다려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기쁨을 만끽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오늘 다윗과 아사헬을 통해서
지혜로움과 미련함의 모델을 보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이
겉에서 보면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그것이야 말로 가장 지혜로운 행동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사헬처럼 기회를 잡아 재빨리 자기 판단과 힘과 실력으로
때를 자기 마음대로 조정하려는 것이 어리석은 행동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하오니 주님, 우리로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시고,
기다리고 인내할 줄 아는 능력, 그 성령의 열매가
우리 삶에 가득하도록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주소서.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지는
완전한 하나님의 뜻을 기뻐하며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