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한 왕이 웅장한 궁전을

새로 짓기 위해 마을에서

많은 백성들을 고용했습니다.

매일 아침 일꾼들은 궁궐 문을 통해 들어가 일하고

저녁이면 궁궐 문을 통과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궐문의 보초들은 매일 저녁

일꾼들이 돌아갈 때마다 모래를 가득 실은

작은 나무 수레를 끌고 나오는 모습에 주목했습니다.

그들은 일꾼들이 성에서 값진 보석을 훔쳐

그 수레의 모래 속에 숨겨 나오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저녁마다 모든 수레들을 주의 깊게 점검했고,

그 속에 무엇이 숨겨져 있지는 않은지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더욱 철저히 조사했지만

여전히 보석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그 일꾼들이 궁궐에서 가져간

값비싼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보초들은 마을 사람들이 보석을

훔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너무나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일꾼들은 계속해서

궁궐에서 무엇인가를 훔쳤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래를 담는 작은 나무 수레였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보초들처럼

눈은 가졌으나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수많은 문제점들 속에서도

잠재력과 가능성, 도전과 능력을 볼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180도 달라집니다.

이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세계관의 강의로 유명한 데로 밀로란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 쓰신 ‘생각은 결과를 낳는다!’ 라는 책을 보면

인간의 현실과 삶은 그가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는가에 따라 결정 된다고 합니다.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사고방식에 따라

삶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가난한 나라에 많은 원조를 해주어도

가난한 나라는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원조로 인하여 Spoil되면 되었지

그들은 절대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속에는

가난의 Mind set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바꾸지 않는 한 그들은 절대로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마인드 셋이 바뀔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우리의 사고방식이 바뀔 수 있을까요?

데로 밀로는 확실히 말합니다.

오직 복음으로만 바꿀 수 있다고 말입니다.

데로 밀로는 나아가 만일 복음이

생각을 바꿀 수 없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니다. 라고 주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복음은

위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위대한 도전입니다.

복음이라는 위대한 도전 앞에

순복할 때 우리의 사고방식이나 마음은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도전인 복음은

특별히 신약 성경적인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도전은

어떻게 표현되고 있을까요?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위대한 도전을

종종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었다.’ 라고 씁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에 등장하는

사울은 바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위대한 도전을 받게 됩니다.


사무엘 11장을 보면

암몬 왕 나아스가 길르앗 야베스를 침공합니다.

길르앗 지방은 원래 암몬의 땅이었으나

르우벤 지파가 차지한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암몬이 힘이 커지자,

암몬 왕이 르우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길르앗 야베스에 살던 르우벤 사람들은 

암몬 왕 나아스가 얼마나 강한지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암몬이 쳐들어 왔을 때,

사자를 보내서 항복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했습니다.

항복과 함께 조공을 선뜻 바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암몬 왕 나아스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암몬 왕 나아스는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사무엘상 11장 2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어 보겠습니다.


11:2 암몬 사람 나하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어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암몬 왕 나하스는

길르앗 사람들의 눈을 다 빼야

그나마 길르앗 사람들의 항복을 받아주겠다는 것입니다.

눈을 뺀다는 것은 목숨은 살려주지만

전혀 활동 할 수 없는 식물인간을 만들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오른 눈을 뺀다는 것은

전투력을 없애 버리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세푸스의 글에 의하면 전쟁할 때

사람들은 왼손으로 방패를 든다고 합니다.

방패로 왼쪽 눈을 가리면서도

오른쪽 눈으로 보고  싸우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러니 오른 눈을 뽑아 버린다는 것은

결국 전쟁을 아예 치루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즉, 암몬 왕 나아스는 길르앗 사람들을

모두 노예로 잡아 부리기 위해서

그들의 전투력을 뿌리째 뽑아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암몬 왕 나아스의 말은

이스라엘을 향한 모욕이자,

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은

암몬 왕 나아스가 굉장히 교만하다는 뜻입니다.

암몬 왕 나아스가 얼마나 교만했는지는

그 다음 구절을 읽어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1장 3절 말씀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11:3: 야베스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에게 이레 유예를 주어

     우리로 이스라엘 온 지경에 사자를 보내게 하라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 하니라


나아스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나아스에게 제안 합니다.

7일 동안 우리를 구원해 줄 구원자가 없으면

그 때에는 네 말대로 나가서 눈을 뽑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길르앗 사람들의 말에 대해

나아스는 선뜻 좋다고 응해주었습니다.

이것은 병법 상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병법은 적을 연합시키면 절대로 안 되고

완전히 다 갈라놓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도 나아스는

우리를 구원해줄 동료를 찾아보겠다고 하는데도

선뜻 그렇게 하라고 말합니다.

나아스가 왜 이런 반응을 보였겠습니까?

그것은 그가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나아스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그 어디에도 너희를 구원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는 교만한 생각 때문에

나아스는 길르앗 사람들의 제안을 수락했던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나아스의 Sprit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두움의 영입니다.

골리앗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욕할 때도

나아스와 같은 방법을 썼습니다.

앗수르의 산헤립이 유대의 히스기야를 공격할 때도

이와 같은 방법을 썼습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마음껏 조롱했습니다.


천하 신들 가운데 내 손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할 수 있는지 아느냐? 하면서

하나님을 마음껏 모독하는 하나님의 대적자의 Sprit이

바로 암몬 왕 나아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적자가 하나님의 사람들을 압제하고

하나님을 모독한다는 이야기가 온 이스라엘에 전해졌을 때

그 이야기를 들은 사울이 도전을 받기 시작합니다.

사무엘상 11장 5-6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 보겠습니다. 


11:5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가로되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 그들이 야베스 사람의 말로 고하니라

11:6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 노가 크게 일어나서


사울에게 일어난 분노는 개인적인 감정의 분노가 아닙니다.

이것은 성경이 정확하게 표현한대로

하나님의 신에 크게 감동된 반응입니다.


바로 이 마음을 가지고

모든 선교사들이 선교지로 떠나며

목회자들이 목회지에 뼈를 묻을 각오를 하는 것입니다.

어두움 가운데서 헤매고 있는 심령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통분하는 마음이 바로 이 마음입니다.


목회하다보면 충분히 행복하고

기쁘게 살 수 있는 사람인데도 죄에 사로잡혀서

엉망진창으로 고통을 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

정말 가슴이 찢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도전을 받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도전 받을 때

Mind set은 달라지게 되며,

Mind set이 달라지는 순간에 상상하지 못하는

Power가 그 속에서 올라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도전은 힘 가운데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 순간부터 그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상상도 못해 보고, 꿈도 못 꿔본 방법으로

인생이 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도전을 받았을 때 그의 삶 가운데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변화가 뭔지 아세요?

첫 번째로 삶에 힘이 붙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역사입니다.


사울을 보십시오.

그가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좀 전에 읽은 사무엘상 11장 5절에 보면

그는 밭에서 소를 몰고 오는 중이었습니다.


이미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부음 받았고

모든 백성들 앞에서 왕으로 추대까지 받은 사람인데

그가 왜 밭에서 소를 몰고 있었겠습니까?

비록 사울은 왕으로 추대 받았지만

그의 Mind set은 아직도 농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을 다스릴 생각보다는

자기 밭으로 가서 밭을 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기브아 사람들이 울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그들이 울고 있는 이유를 들었을 때,

그는 고통 받는 사람들의 아픔과 더불어

땅에 떨어져서 모욕을 받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에

몹시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도전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도전 받는 순간 사울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힘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바로 그 자리에서

갑자기 그가 끌고 오던 소를 잡아서

각을 뜨고는 그 고기 조각들을

온 이스라엘 지파로 보내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야기 합니다.

사무엘상 11장 7절 말씀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11:7 한 겨리 소를 취하여 각을 뜨고 사자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경에 두루 보내어 가로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좇지 아니하면

     그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같이 나온지라


사울은 공갈하고 협박하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의로운 분노로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사울의 이와 같은 행동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사무엘상 11장 8절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11:8 사울이 베섹에서 그들을 계수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삼 십만이요

     유다 사람이 삼만이더라


온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모두 합해서 삼 십 삼 만이나 모여 들었습니다.

도전을 받은 사울의 말에 강력한 파워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별히 성경은 사울이 말했을 때,

여호와의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했다고 말씀합니다.


그렇게 강력하게 도전 받은 사울은

계속해서 파워를 가지고 길르앗 야베스에 사자를 보냈습니다.

사무엘상 11장 9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어 보겠습니다.


11:9 무리가 온 사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얻으리라 하라

     사자들이 돌아가서 야베스 사람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기뻐하니라


재미있는 것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의 말을 그대로 믿고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눈이 뽑혀야 될지도 모르는 절망적인 순간에 있는 사람들이

그저 사울의 말 한마디를 듣고 기뻐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에게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아가 사울은 파워를 가지고

암몬 사람을 치러가서 암몬을 완전히 박살을 냈습니다.

사무엘상 11장 11절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11:11  이튿날에 사울이 백성을 삼대에 나누고

       새벽에 적진 중에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을 치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한 자가 없었더라.


별다른 전투 경험이 없었는데도

사울은 암몬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도전 받은 사람의 결론입니다.

하나님께 도전 받은 사람은 결코 실패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갖고 있는 그 파워는

세상이 감당할 수 있는 파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도전을 받았을 때 삶 가운데 나타나는

두드러진 변화는 삶에 파워가 붙는 것과 함께

여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즉, 더 이상 쫒기며 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인정받고 싶어서 안달을 하고,

자기를 변명하고, 내세우기 위해서 급하게 열심을 내지만

도전 받은 사람은 여유가 있습니다.

내면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1장 12-1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11:12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11:13 사울이 가로되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하나님께 도전 받은 사람은

자기의 영광을 위해 사소한 분풀이를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파워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자신의 파워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도전 받은 사람은

절대로 과거에 붙잡혀서 분풀이 하는데 힘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먼저 도전 받은 것,

즉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것은 Vision이기 때문입니다.

Vision이 불타고 있는 사람은 과거의 상처에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사실 사울이 처음 왕이 되었을 때,

비류들이 예물도 드리지 않으면서 빈정댔을 때,

사울의 마음에는 상처가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고 나니

사울에게 그것 보다는 오직 Vision을 이루기 위해서

힘과 초점을 모으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 도전 받은 사람이

여유가 생기는 것은 도전 받은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 기쁨과 만족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 만족감은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줍니다.

그것은 세상의 그 어떤 맛있는 음식이나,

세상의 그 어떤 명예나, 권력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만족감입니다.


이렇게 도전 받은 사람,

그래서 힘과 여유를 겸비한 사람만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1장 14-15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11:14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11:15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 사울로 왕을 삼고

      거기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결과적으로 이 일을 통해서

사울은 비로소 왕다운 왕이 되어

새 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즉, 도전 받은 사람에 의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도전을 받는 것은, 즉 하나님의 신이 임하는 것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우는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을 분하게 느끼는 것으로부터

사울의 도전이 시작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요즘 자꾸만 여러분의 눈에 밟히고,

여러분에 귀에 들리고,

여러분의 마음에 아픔으로 느껴지는 도전은 무엇입니까?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도전하시는 것입니다.


혹시 그것이 부담스러워서

자꾸만 눈을 닫고, 귀를 닫고, 마음을 닫는다면

여러분은 절대로 도전 받는 자의

힘이나 여유를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보여주시고, 들려주시고, 느끼게 해주시는 것에

정직하게 반응해보십시오.

그것이 도전을 받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그 일들을 승리로 이끌어 갈 것이며,

또한 여유를 갖게 될 것이며,

그렇게 여러분의 인생은 전혀 새로운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도전에

민감히 반응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힘과 여유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오늘도 우리 무딘 마음에 찾아 오셔서

보여주시고, 들려주시고,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우리 마음 가운데

도전으로 다가오는 것을 순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을 허락하여 주시사

주님으로부터 오는 힘과 승리를 누리며

참 평강과 여유를 누리며

왕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도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